효소 (Enzyme)

효소(enzyme)는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엄청나게 빠르게 만들어 주는 생체 촉매입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하고, 에너지를 만들고, DNA를 복제하는 거의 모든 과정이 효소 없이는 너무 느려서 생명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효소학(enzymology)은 이 효소가 어떤 구조로, 얼마나 빠르게, 어떻게 조절되며 일하는지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효소가 활성화에너지를 낮춰 반응속도를 높이는 원리를 비교합니다.
출처: 촉매 반응과 비촉매 반응의 활성화에너지 · 저작자: Aleia Kim · 라이선스: CC BY-NC-SA 4.0

효소란 무엇인가

  • 생체 촉매(biocatalyst) — 반응을 빠르게 하지만 자신은 소모되지 않아 반복해서 씀
  • 대부분 단백질이며, 일부는 RNA로 된 리보자임(ribozyme)도 있음
  • 활성화에너지(activation energy)를 낮춰 반응이 쉽게 넘어가게 함
  • 반응의 방향이나 최종 평형은 바꾸지 않고, 속도만 높임

화학반응이 일어나려면 물질이 넘어야 할 에너지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의 높이가 활성화에너지입니다. 효소는 이 언덕을 낮게 깎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효소가 있으면(붉은 곡선) 없을 때(파란 곡선)보다 넘어야 할 언덕이 훨씬 낮아져, 같은 반응이 수백만 배까지 빨라집니다. 중요한 점은 효소가 일을 마친 뒤에도 그대로 남아 다음 반응을 또 돕는다는 것입니다. 요리사가 재료를 익혀 주지만 자신은 냄비에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활성부위와 기질

효소의 구조 — 활성부위에 기질과 보조인자가 결합한 모습
효소의 구조와 활성부위 · Thomas Shafee, Wikimedia Commons (CC BY 4.0)
  • 활성부위(active site) — 효소에서 반응이 실제로 일어나는 작은 홈
  • 기질(substrate) — 효소가 작용하는 대상 물질
  • 효소-기질 복합체 — 기질이 활성부위에 결합한 상태
  • 특이성(specificity) — 한 효소는 대개 정해진 기질에만 작용함

효소와 기질의 관계는 자물쇠와 열쇠에 자주 비유됩니다. 자물쇠(효소의 활성부위)에는 딱 맞는 열쇠(기질)만 들어가듯, 효소는 아무 물질이나 붙잡지 않고 모양이 맞는 기질만 골라 반응시킵니다. 이 덕분에 세포 안에서 수천 가지 반응이 서로 뒤섞이지 않고 각자 정확하게 진행됩니다.

유도적합 모형 — 기질이 결합하면 활성부위 모양이 맞춰 바뀜
유도적합(induced fit) 모형 · TimVickers/Fvasconcello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다만 실제로는 열쇠가 딱 들어맞기보다, 기질이 다가오면 활성부위가 모양을 살짝 바꿔 감싸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유도적합(induced fit)이라고 합니다. 손을 넣을때 장갑을 손 모양에 맞춰 늘리는 것처럼, 효소도 기질을 만나면 반응이 가장 잘 일어나도록 자기 모양을 조정합니다.

효소가 활성부위에서 기질을 붙잡아 반응시키는 원리 · Khan Academy

효소 반응속도

기질농도에 따른 효소 반응속도의 포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출처: 미하엘리스-멘텐 반응속도 곡선 · 저작자: Aleia Kim · 라이선스: CC BY-NC-SA 4.0
  • 미카엘리스-멘텐(Michaelis–Menten) 식 — 기질농도와 반응속도의 관계를 나타냄
  • Vmax(최대 반응속도) — 효소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
  • Km(미카엘리스 상수) — Vmax의 절반 속도를 내는 기질농도, 낮을수록 기질과 잘 결합
  • 기질이 많아지면 속도가 오르다가 결국 포화되어 더 오르지 않음

위 곡선은 은행 창구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손님(기질)이 적을 때는 창구 직원(효소)이 손님이 올 때마다 처리해 손님이 늘수록 처리량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손님이 너무 많아지면 모든 창구가 쉴 틈 없이 일해도 처리 속도는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최대치(Vmax)에 머뭅니다. 이때 Km은 창구가 반쯤 바쁠 정도의 손님 수에 해당하며, Km이 작다는 것은 적은 기질만으로도 효소가 빠르게 반응한다는 뜻이라 기질에 대한 친화도가 높다는 지표가 됩니다.

효소 반응속도론 입문 — 기질농도와 반응속도 · Khan Academy

효소의 종류

  • 산화환원효소(oxidoreductase) — 전자를 주고받는 산화·환원 반응을 담당
  • 전이효소(transferase) — 작용기(예: 인산기)를 한 분자에서 다른 분자로 옮김
  • 가수분해효소(hydrolase) — 물을 이용해 결합을 끊음(소화효소가 여기 속함)
  • 분해효소(lyase) — 물을 쓰지 않고 결합을 끊거나 붙임
  • 이성질화효소(isomerase) — 분자의 구조만 바꿔 이성질체를 만듦
  • 연결효소(ligase) — 에너지를 써서 두 분자를 이어 붙임

효소는 하는 일에 따라 국제적으로 크게 여섯 갈래로 분류합니다. 이름만 봐도 역할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소화를 돕는 가수분해효소는 물 분자를 이용해 큰 영양소를 잘게 자르고, 연결효소는 반대로 에너지를 써서 조각을 이어 붙입니다. 이렇게 나눠 두면 수천 종에 이르는 효소도 하는 일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효소를 여섯 종류로 나누는 기준 · Khan Academy

보조인자와 조효소

  • 보조인자(cofactor) — 효소가 일하려면 필요한 단백질 이외의 도우미
  • 금속이온 — 아연·마그네슘·철 등, 활성부위에서 반응을 거들음
  • 조효소(coenzyme) — 유기물 보조인자로, 작용기나 전자를 실어 나름
  • 많은 비타민이 조효소의 재료가 됨(예: 비타민 B군)

어떤 효소는 단백질 부분만으로는 일을 못 하고, 보조인자라는 도우미가 있어야 제 기능을 합니다. 금속이온이나 조효소가 그 예입니다. 조효소는 반응에 필요한 부품(전자, 작용기)을 실어 나르는 택배 상자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비타민을 꾸준히 섭취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으로, 여러 비타민이 조효소의 재료가 되어 부족하면 관련 효소 반응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효소 활성 조절

경쟁적 억제 — 억제제가 기질과 활성부위를 두고 경쟁
경쟁적 억제(competitive inhibition) · Fvasconcellos 외,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경쟁적 억제(competitive inhibition) — 억제제가 기질과 활성부위를 두고 다툼
  • 비경쟁적 억제(noncompetitive inhibition) — 억제제가 다른 부위에 붙어 효소 모양을 바꿈
  • 온도와 pH — 너무 높거나 낮으면 효소 단백질이 변성되어 기능을 잃음
  • 되먹임 억제(feedback inhibition) — 최종 산물이 쌓이면 앞 단계 효소를 스스로 멈춤

효소는 무작정 계속 일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조절됩니다. 위 그림의 경쟁적 억제는 활성부위라는 하나의 자리를 두고 기질과 억제제가 경쟁하는 상황으로, 기질을 늘리면 억제를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많은 약이 이런 원리로 특정 효소를 막아 병을 치료합니다. 또한 효소는 단백질이라 온도가 너무 높거나 산성·염기성이 지나치면 모양이 풀려 기능을 잃으므로, 우리 몸이 체온과 pH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효소가 제대로 일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